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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외제차 … 농민들의 ‘무릉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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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잘사는 농촌이라는 장쑤(江蘇)성 장인(江陰)시 화시(華西)촌. 전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의 시골 마을이다. 1인당 연간 소득이 1만 달러를 돌파해 중국 평균
(지난해 2000달러)의 다섯 배를 넘는 부자 농촌이다. 중국의 경제 중심 도시 상하이(上海)의
훙차오(虹橋) 공항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가자 ‘천하제일촌(天下第一村)’이란 간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잘살기에 이런 과장 어린 수식어가 붙었을까. 경계심과 궁금증이 동시에 발동했다.

깔끔하게 포장된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좌우를 살펴봤다. 중국의 여느 농촌에서 흔하게
만나는 너저분하거나 어수선한 분위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뜻밖에도 미국의 전원도시를 연상시키는 풍경들이 하나씩 펼쳐졌다. 조경에 신경을
많이 쓴 듯한 도로. 가로변에는 노란 오렌지가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려 있다. 한눈에
풍요로움을 느끼게 했다.

중국의 전통 탑 모양을 본뜬 별 다섯 개짜리 15층 화시진타(金塔)호텔에서 내려다보니
서남쪽으로 전원형 빌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동남쪽으로는 푸른 지붕을 덮은
공장지대가, 그 너머로는 농지가 펼쳐져 있었다.

◇농민들이 꿈꾸는 이상향=화시촌에 가동 중인 섬유업체에서 부장으로 일한다는
자오위카이(趙宇凱·28)의 3층 빌라를 찾아갔다. 전업주부인 아내, 갓 태어난 아들과 함께 사는
300㎡짜리 이 빌라는 200만 위안(약 2억4000만원)을 호가한다. 그의 집 차고 앞에는
18만 위안(약 2160만원)을 주고 샀다는 붉은색 포드 자동차가 주차돼 있었다.

집 안 거실로 들어가니 족히 40인치는 넘어 보이는 일본 히타치의 컬러TV가
한눈에 들어왔다. 집 안에서 인터넷도 가능하다. 한국 서울의 풍족한 중산층 가정과
별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자오는 매월 1000위안을 받는다고 했다. 생활 수준에 비해 너무 적어 놀랐다. 물론
그의 수입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지난해 7월 한국 유학을 다녀온 뒤 입사해
6개월 만에 10만 위안(약 1200만원)의 연말 성과급을 받았다. 쑤저우(蘇州)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한국에서 무역학을 공부해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결과란다.

“아버지는 독일 업체가 만든 아우디를 몰고 다닌다. 20년간 열심히 배우고 일해
내 회사를 차려 사장이 되면 나는 아우디가 아니라 벤츠도 몰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는 “젊을 때 열심히 일해 돈을 모은 뒤 조기에 은퇴해서 여생을 편안하게 사는 게
우리 세 식구의 꿈”이라고 말했다.

자오의 사례는 화시촌에서 유별난 게 아니었다. 화시에선 다분히 평균적인 촌민의
생활 수준이다. 화시촌 사람들은 “우리는 돈·집·자동차·자식·체면 등 다섯 가지를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자랑했다.

화시촌 정부가 1억2000만 위안(약 144억원)을 투자해 세웠다는 9년제 화시
실험학교에 들렀다. 푸른 양잔디 운동장 위를 학생들이 달리고 있었다. 팡원룽(方文龍) 교장은
“소학교(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9년간 학비 부담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촌 한가운데 위치한 건강검진센터는 화시촌의 풍요를 상징하는 곳이다. 일반
중국 농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내시경과 컴퓨터단층촬영(CT)기 등 현대적
의료장비들을 완비하고 있었다. 화시촌 특별취재를 왔다는 후난(胡南)성 창사(長沙)
TV방송국 허장타오(何江濤) 기자는 “화시촌을 보니 당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묘사한 무릉도원 같다. 중국 촌 단위에서는 절대 보기 힘든 이상향 같은 동네”라고 평가했다.

◇실사구시로 부자됐다=화시촌은 원래 창장(長江) 하류 지역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대대로 벼농사를 지어온 가난한 이곳은 1978년 말 덩샤오핑(鄧小平)이 촉발한 개혁·개방을
계기로 부자촌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당시 중국 공산당 화시촌 지부 당서기였던 우런바오(吳仁寶·79) 화시촌 고문은 주민들을
설득하러 다녔다. 그는 “인민공사(중국식 집단농장)에서 일해 번 돈을 집집마다 2000위안씩
갹출해 공장을 짓자”고 제안했다. 처음에 주민들은 “허허벌판에 무슨 공장이냐”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 서기의 끈질긴 설득에 동의한 몇몇 촌민들의 돈을 모아 나사못 공장을
차렸다. 나사못은 때마침 불어온 공업화 바람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농촌의 소득증대를 위해 중국 정부가 80년대 시작한 향진(鄕鎭)기업 육성정책에 적극 호응해
철강·섬유 공장을 잇따라 지었다. 지역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약 30년이 흐른 지금 화시촌은
연간 매출액이 430억 위안(약 5조원)을 돌파한 화시집단(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촌 전체가
하나의 기업이 된 셈이다. 화시집단은 철강·부동산·건설 등 8개 부문의 자회사를 거느린
대그룹으로 성장했고 증시에도 상장됐다.

촌민들은 화시촌의 비약적인 발전 요인에 대해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한
우런바오의 리더십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덩샤오핑이 “가난은 사회주의가 아니다”라고
역설했을 때, 우런바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해주는 게 진짜
사회주의다”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철강회사에서 유럽권을 상대로 무역을 담당하는 룽진(龍晋·27)은 우런바오의 리더십에 대해
“그럴싸하게 말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입증해 보이는 지도력이 탁월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촌민들의 사고방식을 바꿔놓은 것이 최대 업적”
이라고 평가했다.

◇시장과 계획이 혼합된 ‘화시촌 모델’=화시촌은 중국의 다른 농촌과 달리 발전 모델이 독특하다.
쉽게 말해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혼합돼 있다. 먹고 입는 문제는 계획경제 방식을 아직도
채택하고 있다. 촌민 모두에게 매월 800∼1000위안의 기초 생활비가 지급된다. 식량은 촌의
집체(集體) 토지에서 경작한 것을 공급받는다.

그러나 능력과 실적에 따라 연말 성과급은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차등 지급된다.
1년간 일한 실적을 엄격히 평가해 연말에 최저 4만 위안에서 최고 수천만 위안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해주되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으면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다.

현재 팔순을 앞둔 우런바오 전 서기는 요즘 벤츠600을 타고 다닌다. 현 촌장이 연간 700만 위안의
성과급을 받아도 촌민들은 사치한다거나 부패라고 문제삼지 않는다. 충분히 그런 대접을 받을 만큼
기여했다고 인정해준다. 한 촌민은 “너무 평등하면 동기부여가 잘 안 된다. 격차가 있어야
따라잡겠다는 의욕을 고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수한 인재 육성에 각별히 투자해온 것도 화시촌 발전의 숨은 요인이다. 일찍부터 해외유학을
장려해 영어는 물론 일본어·한국어·러시아어·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우수인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것도 부족해 지난해엔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250명의 대학 졸업자를 스카우트해 교육 중이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중국의 많은 전문가가 화시촌의 성공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중국 공산당은
화시촌의 성공 사례를 대대적으로 선전해왔다. 화시촌 당 지부 설립 50주년을 맞아 최근 구슈롄
(顧秀蓮)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이 방문해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의 모범 사례”라고 화시촌을
극찬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화시촌 모델을 중국 농촌에 보편적으로 적용하기엔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화시촌은 30년간의 발전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74층짜리 고층빌딩 신축 공사를 8월에
착공했다. 5년간 10억 위안(약 1200억원)이 들어가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지난해엔 108t짜리
천하제일종(鐘)을 내걸었다.

이처럼 외양이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지만 화시촌 지도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미래를 낙관할 수만 없기 때문이다. 중국 중앙정부가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을
퇴출시키고 환경보호를 강조하면서 화시촌의 산업은 구조조정이 절실한 단계에 와 있다.

건설자재로나 쓸 수 있는 강철을 계속 생산해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2000명이던 촌 인구가 앞으로 3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상황이다.

이에 대해 우런바오 전 서기는 “화시촌에 무임승차해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화시촌은 아직도 갈 길이 남아 있어 보였다.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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